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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IVIAN MAIER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 그라운드 시소 성수 GROUND SEESAW SEUNGSU 22.8.4-11.3카테고리 없음 2022. 9. 14. 20:34
VIVIAN MAIER 비비안 마이어 사진전을 다녀왔다. 그라운드 시소 성수는 처음 가봤는 데 주변 건물들이 모두 새삥?!이고 구획이 잘 나누어져 있어서 쾌적했고 구경하기 좋았다. 맛집도 많은 것 같고, 주변 산책하기도 좋다. 아주 주변환경이 최고시다.
비비안 마이어는 생소한 사진작가인데 생전에는 전혀 주목을 못받다가 사후에 우연히 경매를 통하여 그가 찍은 사진들이 존 말루프라는 사람을 통해 공개되게 된다. 그의 직업은 보모였고, 사진찍는 것이 그의 존재를 드러내는 유일한 행위였던 것 같다.
나름 스스로의 명확한 삶의 철학과 엄격한 기준이 있어 사진현상에 있어서도 까탈스러웠다고 하고, 저장강박도 있어서 신문과 많은 사진과 필름, 릴 등의 수 많은 박스를 이고 지고 살았 던 것 같다. 보모라는 직업으로 숙식도 해결했다고 하는 데 옮겨다니는 집마다 기거하는 방에 시건장치를 집주인에게 늘상 요구했다고 하니 독립된 자기 공간에 대한 분리와 자신의 작품들에 대한 쓸데없는 간섭, 원치않는 공개를 매우 싫어했 던 것 같다.
그의 노년이 매우 쓸쓸히 마감되었고, 노년에는 그 좋아하던 사진을 찍는 것 또한 포기했다고 한다. 여러 기회를 통해 그의 작품이 더 빨리 세간의 주목을 받아서 경제적인 상황이 해결되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홀로 고립되지 않고 그의 작품에 대한 가치를 알고 후원하는 사람들과의 만남이나 그의 성격을 보완해주고 응원하고 지지하는 친구들이 있었더라면 어땠을까?
보석을 가지고만 있으면 뭐하나.. 자랑해야지.. 살아가는 데 도움이 되게끔 만들어야지..
그에 처한 상황에서 부단히 노력했을 테지만, 그래도 많이 아쉬웠다. 하지만 고흐에게 열렬한 지지자인 그의 동생 테오가 있었음에도 그의 삶이 비참하게 끝난 것 처럼 자대고 선 긋는 것처럼 말처럼 쉽지 않은 게 인생이니까. 어떤 게 더 좋았을 거라고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 것 같다고 쉽게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들만의 각자의 사정이 있었을 테니까. 그래도 썩히거나 묻어놓지 말쟈!!
그와 관련된 다큐도 있는 데 그의 사진을 공개한 존 말루프가 감독이다. 감독인 존 말루프가 그의 삶을 족적을 따라가 보는 데, 그에 대한 상반된 사람들의 평가도 재미있었고, 그가 시대를 너무 앞서가지 않았나 싶기도 했다. 그 당시 사진기가 널리 통용되지 않았을 시절에 비싼 사진기를 사서 찍고 다녔으며, 나중에는 영상 제작에도 관심을 보였다고 하니, 계속 발전되는 새로운 문물에 대해 누구보다 스스럼 없이 발 빠르게 적응하고 작품의 세계를 넓혀갔던 것 같다.
거리의 사람들 사진들이 유독 눈에 띄는 데 그의 관찰력이 빛을 발하는 시점이다. 나름 괴팍하고 또 자유로우며 외롭고, 고독하고 독특한, 정직한 시선과 예술혼이 살아있는 그의 작품들을 보며 어느새 나도 나에 대해 가만히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1950년대의 뉴욕의 거리를 함께 거니는 듯 했고, 울 할머니 연배여서 더욱 친근하고 짠한 마음이 들었던 비비안 마이어. 이름도 수시로 변경했다고 하니 정말 수수께끼같은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상처가 많았던 걸까. 번 돈으로 현상하고 필름사고 장비사느라 가난을 벗어날 수 없었 던 걸까. 다큐를 보니 보모로써 돌보던 아이들을 길에다 버렸었던 적도 있었다고도 하고(해서는 안되지만 아이들을 벌주려고 그런 듯... 경찰이 결국 찾아주었으나.. 이젠 어른이 된 당사자 분의 그 기억에 대한 분노가 느껴졌음) 또 그 중엔 노년의 보모였던 비비안을 돕기위해 그의 집을 구해주고 월세를 내주던 이도 있었다.
전시에서 정서적박탈감을 저장강박으로 해소하였다는 글도 봤는데, 사진이라는 친구와 함께한다고 해도 너무 삶이 쓸쓸했을 것 같다. 집안의 작은 공간을 부여받아 가족인듯 아닌듯 남의 집에 얹쳐서 산다는 건 어떤 의미였을까. 돌봤던 말이 잘 통하지 않는 아이들과의 정서 교류만으로는 늘 부족했었을 것 같다.
비비안은 얹쳐사는 거에 그치지않고 돈을 모아 그 당시에도 흔치 않던 말레이시아, 홍콩, 태국, 인도 등 몇개월간의 해외여행도 떠난다. 이때의 미소짓는 비비안의 사진을 발견할 수 있는데, 여행이 그에게 뭔가 강아지들이 공원에 나와서 시종일관 여러 냄새맡느라 정신이 없듯이, 새로운 공간에서 온갖 자극으로 호기심이 증폭되어 참 행복한 순간이었을 것 같다.
전시 촬영은 3군데였나, 기념 촬영이 가능한 곳에서만 가능했다. 기념촬영 장소 또한 모두 재미있게 꾸며져 있었고 작품수와 곳곳에 소개하는 글도 많아서, 그의 작품과 비비안을 알아 가기에 좋았던 것 같다.
지금 생각하면 몰카일까 싶지만, 비비안이 들고 다니던 카메라처럼 지금도 시선을 아래를 보고 사진을 찍는 다면, 피사체에 눈을 마주치지 않고 좀 더 대범하게 거리의 모습을 찍을 수 있을까? 사진기도 사진기이지만 비비안이라는 사람 자체가 대범했던 것 같다. 강렬한 그의 카메라속 시선과 사진속 인물들의 시선이 마음에 남는다. 전시비가 아깝지 않은 전시였다.